쀼의 문화 생활

[기록의 소중함] 영화 디태치먼트, 도망치지 않아주는 당신이 소중한 이유 (스포 있음)

모두까기쀼 2023. 5. 3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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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게 있어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는 과거,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는 일입니다. 당시엔 게을러, 그 영화들을 보고 기록을 남기는 일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었죠. 그나마 한 게, 왓챠피디아에서 별점을 남기는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지금 와 돌아보면 참 잘한 일이라고 봐야 할까요. 그렇게 꽤 긴 시간을 묵힌 영화들은, 별점을 통해 간간이 '괜찮은 영화였지' 하는 단편적인 감상만을 떠올릴 정도만의 기억을 남겼는데요,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 좋았고, 어떤 장면이 인상 깊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쉬운 일이죠.

그래서 요즘은, 과거의 영화들을 다시 보고, 웬만하면 짧은 기록이나마 남겨보려 합니다. 흘려보내고 나니 괜찮았던 작품들이 꽤 많아서요. 오늘 소개하는 작품 역시, 과거 제게 신선한 의미의 충격을 남긴 영화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버티는 이들과, 그런 이들로 인해 오늘을 이겨내는 이들의 이야기, 디태치먼트입니다.

 

 

2014년 개봉한 이 작품을 접한 건, 그로부터 몇 해는 더 지나서였습니다. 순전히 주연인 애드리언 브로디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지 않나 싶어요. 당시, 영화 피아니스트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통해 그에 대한 애정도가 극에 달했을 때였거든요. 배우로서 참 좋은 얼굴을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너머에 단단함이 엿보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그 눈빛이 정말 오래 남아요.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배우가 참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감정까지전달해 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뭐 그 정도 연기력이니, 아카데미 최연소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겠지만요.

'디태치먼트'에서도 그는 역시 자신의 장기를 유감 없이 발휘합니다.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 것을 보아,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꽤나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만큼, 아낌없이 자신의 감정을 소모하고, 담아냅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이유는 딱 두 가지, 애드리언 브로디의 눈빛,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였는데요. 스토리에 대한 기억이 흐릿함에도, 딱 저 두 가지 만으로 이 영화에 시간을 할애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여겼고요, 역시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영화 디태치먼트를 소개해 볼까요.

 

줄거리 (스포 있음)

 

영화는 조사를 받는 듯 보이는 주인공 헨리(애드리언 브로디)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고 얘기하는데요. 뒤이어 애드리언의 과거의 단편처럼 보이는 장면과 더불어 다른 교사들의 인터뷰 장면이 이어지죠. 그들은 본인이 교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헨리는 말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오직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어른이 되기 위해선 가이드가 필요하다고요. 이 말이 무력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요.

헨리는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단기 기간제 교사입니다. 새로 부임하는 학교에서는 한 달간 근무하기로 계약을 한 상태인데요. 보아하니 문제아들만 모이는 만만치 않은 학교인 듯합니다. 외부 인사로부터, 학생들로부터 교권을 침해당하는 여러 교사들의 모습이 보이죠. 헨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첫날부터 만만치 않은 학생들을 만나는데요, 헨리 역시 이런 상황엔 이력이 났습니다. 능숙하게, 문제아들을 다루고,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메러디스는 그런 헨리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죠.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혼란하기 그지없습니다. 학부모는 아이를 퇴학 시켰다며 쫓아와 폭언을 행사하고, 학생들은, 입에 담지도 못할 모욕적인 언사로 교사들을 겁박하죠.

 

 

한편, 헨리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어릴 적 엄마에 관한 기억과 더불어,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할아버지까지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 버겁기만 하죠.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를 챙기고 돌아오는 길, 헨리는 거리에서 몸을 팔아 생활하는 10대 소녀 에리카(사미 게일)를 만납니다.

 

교사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돌보려 합니다. 찰스(제임스 칸)는 다소 거칠지만, 미워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헨리는, 어떻게든 아이들이 학교와 배움의 가치를 깨닫게 할 수 있도록 가르치려 하죠. 이런 진심은 메러디스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서서히 전해집니다.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존중받지 못하던 메러디스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헨리를 통해 용기를 얻죠. 그리고 헨리에겐 또 한 명의 돌봐야 할 아이가 생깁니다. 또다시 마주친 에리카인데요, 그녀는 누군가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 방법을 모릅니다. 언제나처럼 헨리에게 몸을 팔려 하는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간 헨리는 에리카에게 진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고, 그녀의 건강을 살핍니다. 에리카는 그런 헨리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고, 헨리 역시 에리카에게 과거 자신의 트라우마(할아버지의 성적 학대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했던)를 고백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사건들은 끊이지 않습니다. 학교는 사라질 위기고, 문제아는 여전히 많으며, 교사란 직업은 늘 위태롭지만 가정에서도 이런 고충을 나눌 이는 없습니다. 교사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존재의 가치를 잊어가죠.

 

 

헨리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슬픔을 알아보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메러디스를 위로하려 하지만, 그 상황을 오해한 동료 교사 사라(크리스티나 핸드릭스)의 태도는 헨리의 트라우마를 다시 자극하죠. 그리고, 헨리의 깊은 상처이자 책임감의 대상이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헨리는 다시 현실에서 도망치려 합니다. 가족같이 여기던 에리카마저 청소년 보호 센터로 보내고야 마는데요. 능력이 있음에도 기간제 교사 자리만 전전한 이유 역시, 자신의 현실에서 회피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학부모 모임 날이 찾아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방문을 기다리지만 방문한 이는 단 한 명뿐입니다. 선생님들은 짙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메러디스 역시 비슷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녀는 교내에서 자신의 작업물들을 이용해 구운 머핀을 나눠주는데요. 마지막 인사를 위해, 그리고 사과를 위해 온 헨리 역시, 그녀에게 끝내 사과를 건네지 못한 채 머핀을 받습니다. 그리고 메러디스는 헨리의 앞에서 죽음을 선택하죠. 헨리는 그런 메러디스와, 망가진 학교를 떠나보낸 뒤, 청소년 센터로 에리카를 찾아갑니다.

 

 

처절하게 버티는 이들과, 그런 이들로 인해 오늘을 이겨내는 이들의 이야기

 

 

그날 전 집에서 쉬었죠. 부모님들이 안 왔거든요.

어떤 상태였냐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을 보는 듯한 순간이었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영화 속 교사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한계로 내모는 아이들을 단지 본인들의 학생이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감당해 내야만 합니다. 가정에서 존중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했던 아이들이 내몰린 최후의 보루이기에 학교는 그야말로, 처절한 사투의 현장입니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교사라는 존재는 더 이상 존중받을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생계를 떠나, 직업적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린 지금,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버텨야만 하는 걸까요.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교사들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무력한 표정을 한 채 때때로 절망감을 내비칠 뿐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나, 사명감 따윈 사치처럼 보이죠. 그럼에도 그들은 학교를 떠나지 않습니다. 일부라도 그런 그들로 인해 버티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어긋난 방식인지도 모른 채, 관심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내지르는 소리에 상처받고, 슬퍼하던 교사들이 끝내 학교를, 그리고 아이들을 저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교사들의 존재가 결국, 아이들에게 오늘 하루를 버텨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 아닐까요.

 

 

남기고 싶은 명대사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무뎌지는 것과 싸우기 위해서 배우는 거야.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식과 신념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 모든 기술이 중요하지.
우리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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